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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화중 - 홍문귀(洪門鬼), 1화

글 : 이주희 / 그림 : 박형욱

화중 : 홍문귀(洪門鬼)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늦은 밤이었다. 숙소로 향하던 화중은 안채에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발을 멈추었다. 이미 자정을 넘어선 늦은 시간인데 사부님께서 깨어 계신 건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사부, 홍석근의 얼굴이 떠오른 화중이 걱정스럽게 안채를 주시하던 그때였다. 안채 문이 열리며 그림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자세히 보니 영묵이다.


“사형, 사부님께서는 아직 주무시지 않는 겁니까?”

“화중이 넌 안 자고 뭐 하고 있었느냐?”


화중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춘 영묵이 그를 발견하곤 되물었다. 등 하나 없이 달빛에 기대어 살핀 영묵의 안색이 왠지 좋지 않아 화중이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사형, 사부님께서는 영 차도가 없으신가 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늦은 시간에 안채에서 나오시는 사형 안색이 좋지 않아서요. 낮 동안 기침도 심하셨고….”

“말이 씨가 된다 하였다. 그런 말 말고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단칼에 화중의 말을 잘라낸 영묵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화중을 뒤로 하고 잠자코 앞으로 걸어가는 영묵이 입을 열었다. 


“내일 막내를 홍문파의 정식 제자로 들일 것이다.”

“네!?”


갑작스러운 영묵의 말에 화중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신의 말에 놀라 둥그래진 눈으로 말도 잇지 못하는 화중을 본 영묵이 웃었다.


“네가 막내를 가장 열심히 챙기지 않았느냐? 이 정도 소식은 네가 먼저 알아도 좋을 것 같아 알려주는 게다. 내일 사부님께서 조례 때 공표할 게다.”

“헤헤, 막내가 알면 좋아할 텐데 밤이 늦어 말도 못해주겠네요. 사형, 그러면 내일 통과의례까지 모두 마치는 건가요?”

“별 일 없으면 입문에 관련한 절차는 모두 마칠 예정이다. 시험의 동굴은 무성이 막내를 데리고 들어갈 게야.”

“네? 영묵 사형이 아니고 무성 사형이요? 원래 입문 절차는 사부님이나 사형께서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성이가 이번부터는 자신이 해 보겠다고 해서 그리 됐다.”


하긴, 영묵 사형은 사부님 수발 드느라 바쁘니 그게 나으려나. 화중은 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들어온 지도 꽤 되었고 수련도 항시 열심이니 정식 입문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결정되다니, 내일 모두 놀라겠는걸.


문 내의 일이며, 무공 수련에 대해 두런두런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이 문을 열자, 희미한 호롱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 중이었던 무성이 두 사람을 발견하곤 자세를 풀었다.


“아직 자지 않은 게냐?”

“오늘은 어째 잠이 오지 않습니다, 사형.”

“설마 내일 통과의례를 주관하는 것 때문에 긴장한 게냐? 너답지 않은데?”


영묵의 농에 무성이 말없이 씩 웃었다. 화중은 두 사형에게 인사를 올리곤 곧장 자신의 침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왠지 무성의 미소가 쓰디 쓴 것 같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화중은 내일 어떻게 하면 막내를 놀래 켜 줄까 고민을 하며 잠을 청했다. 


*


"무성 사형, 지금 가실 겁니까?"

"사형께서 막내를 데리고 가셨으니 나도 슬슬 출발해야지."


보통 때의 도복이 아닌 차림새를 한 무성이 몸을 풀며 대꾸하자 화중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그걸 본 무성이 실소를 터트리며 화중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나도 입문할 때 거쳤던 과정이 아니냐? 뭐가 그리 걱정인 거냐. 설마 내가 네 하나뿐인 사제를 잡아먹기라도 할까 싶은 게냐?"

"괜히 녀석이 실수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럽니다."

"하하. 실수할 게 있어야 하지. 걱정 마라. 거기선 별 일 없을 테니."

"별 일 없겠지요. 암요."


말꼬리를 흐리는 화중을 말없이 바라보던 무성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연무장을 나섰다. 옆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진영이 슬쩍 끼어든다.


"화중아, 너 너무 유난 떠는 것 같아. 너도 가 봤잖아. 시험의 동굴에서의 시험은 말 그대로 통과의례야. 잘못 한다고 입문이 취소되거나 하진 않아."

"알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 걱정이 됩니다."


어쩌면 어제 보았던 무성 사형의 씁쓸한 미소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갑자기 시험의 동굴에 가는 사람이 무성으로 바뀌어서일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지금 화중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냥 잘 되겠거니 하면 된다. 무성 사형이 어련히 잘 하시겄냐."


길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화중은 검을 들고 다시 수련인형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말 별일이야 있을라고.


*


“진영 사저, 뭘 그리 보고 계세요?”


횡 베기 수련에 열중하던 화중이 잠시 땀을 식힐 요량으로 동작을 멈추자마자 보인 것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영이었다. 화중의 부름에 진영이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있잖아.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뭔 개풀 뜯는 소리여. 사람이 어찌 하늘을 날어?”


길홍의 핀잔에 진영이 허탈하게 웃고는 수련에 다시 돌입하였다. 길홍은 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화중은 진영이 바라보던 하늘을 말없이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만 보일 뿐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오전 나절에 비해 먹구름이 많아진 것 정도겠지만. 여하튼 구름이 많으니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구름이 많아서 지나던 새를 사람으로 착각하거나 한 거 아니에요?”

“됐어. 내가 헛소리 했으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연습이나 계속해.”


어차피 자신이 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지금, 더 말해 봐야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했다. 아침 나절 무성에게 받았던 핀잔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 진영이었다. 하지만 그런 진영의 반응이 되려 이상했는지 이번엔 길홍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오늘 화중이도 그렇고 진영이 너도 그렇고 좀 이상허다? 진영아, 여자의 감은 무섭다든디, 진짜 뭐 있는 거 아녀?”

“어라, 진영 사저에게 여자의 감이 있었어요? 와, 난 몰랐네!”

“이익! 너 등짝 더 맞고 싶지! 진짜 안 봐준다!”


진영이 주먹을 쥐고 기를 잔뜩 끌어올리자, 화중이 재빨리 길홍의 등 뒤로 숨었다. 진영이 그의 뒷덜미를 잡으려 빠르게 몸을 날렸지만 다람쥐 마냥 날랜 사제를 잡아채는 것은 역시 역부족이었다. 몇 차례 시도에서 번번히 실패하자 진영도 결국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너, 길홍 사형 때문에 봐 주는 줄 알아. 자꾸 놀리면 꼬리 털 다 뽑아 버릴 거야.”

“헤헤. 알겠어요. 그런데 사저, 괜찮은 거예요?”

“네 말대로 날아가던 새라도 잘못 봤나 보지. 이제 신경 쓰지 말자. 오늘 같은 날 괜히 재수 없어질라.”


진영의 말에 화중의 시선이 연무장 너머 그 아래 시험의 동굴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지금 막내가 통과의례를 진행하기 위해 무성과 함께였다. 

 

“흠, 별 일 없겠죠?”

“아이고, 하루종일 걱정이네. 더 이상 입방정 떨지 않을 테니까 신경 쓰지마.”

“그려. 오늘은 그냥 절차 별 것 없는 통과의례를 치르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어. 무성 사형이 어련히 알아서 잘해 주실까.”


문득 전날 밤 스치듯 보았던 무성의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체 지금 왜 그것이 생각나는 거람. 화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한 걱정 때문에 정말 재수 없어지면 곤란하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을 삼키며 뒤를 돌아설 때였다. 


“어라, 비 오는 거야?”


진영이 말을 뱉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툭 하고 화중의 이마에 떨어졌다.  먹구름이 몰려드는 것 같더니 결국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날씨라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래도 맑았으면 했는데 비라니. 미간을 찌푸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당황한 길홍과 진영이 연습을 멈추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따라 주변 물품을 주섬주섬 챙기던 화중이 고개를 들었다. 


“무성 사형이랑 막내는 언제 나올까요?”

“글쎄다. 시험의 동굴에 들어가면 보통 한 시진 안에 다 끝나는데… 오늘은 좀 오래 가는 갑네? 혹시 헤매고 계신 거 아녀?”

“무성 사형이 길홍 사형도 아니고 헤맬 리가요.”

“진영이 넌 뭔 말을 그리 허냐. 무성 사형도 사람이여. 분명히 긴장해서 제대로 못하고 있을겨!”

“설마요. 좀 더 친절하게 많은 걸 전수하고 있겠죠. 암요!”


어째서 무성의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둘이서 저렇게 설전을 벌이는지 알 수가 없다. 화중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연무장을 나섰다. 


“다섯째 너 어디 가? 마저 정리하고 숙소 가야지.”

“저는 제 사제를 데리러 동굴에 가렵니다.”

“수련 중인 동굴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 거 몰라서 그래?”

“동굴 앞에서 ‘막내야, 밥 먹으러 나와라!’ 외칠 겁니다. 귀머거리 아니면 다 듣고 나오겠죠.”

“조심해. 괜히 방해했다가 사형 화 나면 밥이고 뭐고 쫄쫄 굶어야 하는 수가 있어.”

“진영 사저가 식사 당번일 때는 굶어도 아쉽지 않습니다욧! 저도 맛있는 게 좋거든요~”

“야!”


어이쿠, 이렇게 질렀으면 쌍심지 켜고 쫓아 오기 전에 꽁지 빠지게 도망가야지! 화중이 씩 웃으며 재빨리 시험의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동굴로 향하는 비탈길은 이미 진창이 되어 있었다. 엉망인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진창인 길 때문일까?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화중이 발에 공력을 실어 빠르게 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한달음에 달려간 동굴 앞은 거세게 내린 빗줄기 때문인지 물안개가 자욱했다. 괜히 방해했다가 혼나지 말라는 진영의 말이 떠올라 주저하던 화중이 무성을 부르기 위해 동굴 입구로 한 발짝 다가섰을 때였다. 정체 모를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목덜미까지 순식간에 타고 올라왔다.


“누구냐!”


재빨리 방어태세를 취하며 돌아본 화중이 빗속에서 일렁이는 정체 모를 기운을 발견하였다. 열사에서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바닥에서 일렁이는 검은 기운, 그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대를 확인한 화중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을 탁기로 가득 채운 기괴한 형태의 악귀.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지만 스승의 이야기를 통해 지겨울 만큼 들었던 마계의 존재, 바로 소환귀(召喚鬼)였다. 


소환귀가 대체 여기엔 어떻게 나타난 거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킨 소환귀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자 이들을 피해 뒤로 움직이던 화중이 그만 균형을 잃고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재빨리 몸을 굴려 뒤로 빠지려 했지만, 등 뒤에 바로 붙어 있던 암벽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 

제길, 끝인가! 화중이 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소환귀의 날카로운 손톱이 화중을 덮치려던 찰나, 갑자기 날아든 장(掌)에 소환귀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스러졌다.


“괜찮으냐, 화중아!”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무성이 소환귀들을 상대하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 화중에게로 소환귀들이 다시 달려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소환귀들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형, 막내는요?”

“막내는 내가 전수해 준 것을 확인하고 바로 나올 게다. 나오면 곧장 숙소로 올려 보내야겠어. 이 상황을 알려야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력을 실어 내지른 무성의 주먹에 소환귀 한 마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소환귀가 무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환귀들에게 둘러싸인 건 화중도 마찬가지였다. 



“흐, 끝도 없잖아. 대체 이것들 뭐야!”


그때 시험의 동굴에서 뛰쳐나온 막내가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바깥 상황에 당황한 막내를 향해 무성이 외쳤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어서 숙소로 돌아가 보거라!”


이제 겨우 정식 제자가 된 막내였다. 비탈길 위로 무엇이 있을 줄 알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기본 무공 몇 가지와 가벼운 경공이 끝인 녀석을 올려 보내는 거지?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소환귀 때문에 화중은 막내에게 조심하라는 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 장대비 사이로 흐려지는 막내의 뒷모습만 훔쳐보았다. 그때였다.


채 막지 못한 소환귀의 날카로운 손톱이 화중의 가슴팍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밀려드는 격렬한 통증에 검을 떨어뜨린 화중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시야 너머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무성이 보였다. 그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화중이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으로 휘청거렸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던 화중이 그만 절벽 끝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화, 화중아!”


무일봉 아래, 검게 요동치는 바다로 떨어지는 화중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핏발 선 눈을 한 채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던 무성의 얼굴이었다. 

사형, 대체 왜 그리 복잡한 표정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며 추락하는 중에도 화중은 무성의 눈빛에서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거칠게 요동치는 파도에 삼켜진 화중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여전히 깊은 어둠에 잠긴 하늘. 하지만 수평선 너머 끝자락이 조금 밝아진 걸 보니 곧 아침이 찾아오려는 모양이었다. 화중은 아침이 찾아오기 직전의 하늘을 가득 채운 별 무리와 마주한 채 누워 있다. 무일봉에서도 사형제들과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 보긴 했지만 오늘 같은 장관은 처음이다. 


별을 세고 누워 있으려니 파도가 잘게 부서지며 발을 간질인다. 그래, 난 지금 바닷가에 누워 있지. 고개를 돌려 보자 수평선 끝자락 저 멀리 무일봉이 보인다. 밤 사이 날뛰던 화마(火魔)도 이제는 물러났는지 희미하게 연기만 피어 오르고 있었다.


복잡한 눈빛으로 무일봉을 바라보던 화중이 주먹을 꽉 쥐었다. 단전에서부터 혈도를 타고 극심한 통증이 몸을 휘감기 시작한 것이다. 깊은 숨을 내쉰 화중이 내력 순환을 위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 내내 계속되던 탁기와의 줄다리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바닥에 몸을 뉜 채 운기조식을 하던 화중은 씁쓸하게 웃었다. 문득 늦은 오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진영의 얼굴이 떠올랐던 탓이다. 

제길, 진영 사저의 예감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네.



*             *               *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킨 화중은 정좌를 한 채 내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탁기로 인해 엉망으로 요동치는 기혈을 바로잡으려 운기조식하기를 한 시진쯤 지났을까. 이윽고 제멋대로 날뛰던 기혈이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탁기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여도 이 정도면 무일봉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멀리, 수평선 너머 희미하게 무일봉이 보였다. 사부님, 사형제들, 무일봉의 가축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화중은 입술을 깨물었다.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모두 무사하실 거야.”


애써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화중은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 걸린 것인지, 파도에 휩쓸리다 그리 된 것일까. 도복이 몇 군데 찢어져 비죽하고 살이 튀어나와 있다. 찢어진 부분을 손으로 애써 접어 붙이던 화중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아, 또 진영 사저한테 혼나겠네. 오늘은 내가 꿰매야겠다.”


화중은 무일봉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자. 모두가 무사할 테니 웃으며 돌아가자. 조금 맛이 없어도 정성은 가득한 진영 사저의 밥을 먹으며 막내의 입문도 축하해 주자. 이까짓 탁기, 스승님께서 몰아내주시면 그만이니 돌아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자.

그래,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을 것이다.

아무 것도.


-계속




  • 2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ArmedDragon [l제갈비연l] 다좋은데 겜스토리안따라고 다르게 가네요 초반부터 조금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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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명분 [화중] 화중 키우는 유저입니다 제 케릭대신보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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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jinhan [특수교사 s레노시아s] 화중사형 때문에 다른 캐릭을 못키우겠어요....<br />보고싶다 화중사형....;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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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 [La Viva Amor] 화중사여허어허허허어어어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뿌에에에엥 (이라고 하면서 탁기에 오염된 화중 엄청 쥬긴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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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틱앙 [깐돌쭈] 진짜 블소 하면서 화중사형 퀘 할때는 울었음 ㅠㅠ 가장 슬프고 가장 기억에 남는... 화중사형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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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닉스 [대학생] 무일봉 아래, 검게 요동치는 바다로 떨어지는 화중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핏발 선 눈을 한 채 필사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던 무성의 얼굴이었다.
    사형, 대체 왜 그리 복잡한 표정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며 추락하는 중에도 화중은 무성의 눈빛에서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거칠게 요동치는 파도에 삼켜진 화중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무성도 그래도 사형들한테 정은 잇던모양. 마지막까지 혼란 그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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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린치킨 [신들린치킨] 서고에서도 무일봉을 좋아했고 동문을 아꼈다고 했으니, 그 상황만큼은 엄청 혼란스러웠을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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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냥냥이 [변하는 달빛] 소환귀 한마리가 찌른거에 화중이 죽으면 막내는 소환귀 몇명한테 둘러쌓여도 피가 별로 안깍이는걸 보니 얼마나 쎈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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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퍼 [섭퍼] 허ㅠㅠㅠㅠㅠㅠ난 무성이가 화중이 통수치고 튄줄 알았는데 무성이 왜케 착쁜 쓰레기나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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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피 [천서] 튜토리얼 하면서 이젠 흘려듣는 대사들이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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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냥쮸 [o냥쮸o] 끄어어ㅠ ㅠ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걸 깨닫고 홍문귀 입고 무일봉 나왓다가 막내소식을 들은거구낭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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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정 [절정] 화중사형니므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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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kthk777 [륜국] 아 짠내난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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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지 [홈지] ㅁㄴㅇ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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